jms 정명석 총재 설교 – 말씀 충만, 성령 역사 / 마태복음 13장 44절 고린도전서 15장 51-56절 요한계시록 19장 11-16절

jms 정명석 총재 목사 설교 말씀 충만, 성령 역사

jms 정명석 총재 설교 – 말씀 충만, 성령 역사 / 마태복음 13장 44절 고린도전서 15장 51-56절 요한계시록 19장 11-16절

jms 정명석 총재 목사 설교 말씀 충만, 성령 역사

사람이<최고의 것>을 얻고 사는데도,

‘가치’를 모르면 힘도 없고, 기쁨도 없고, 희망도, 보람도, 만족도 없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 목사 설교 말씀 충만, 성령 역사

가치를 모르면, <보화가 묻힌 밭>을 사고도 ‘기쁨’이 없습니다.
<다른 밭>은 ‘일반 밭’인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밭 하나>이면 ‘보화가 가득 묻힌 밭’이니 얼마나 기쁩니까?

jms 정명석 총재 목사 설교 말씀 충만, 성령 역사

그런데도 가치를 모르면, 평범하게 생각합니다.
<최고의 것>을 얻고도 희망도 느끼지 못하고, 보람도 누리지 못합니다.
가치를 깨달아야 기쁘고 영광입니다.

jms 정명석 총재 목사 설교 말씀 충만, 성령 역사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최고의 축복은 <휴거>입니다.

jms 정명석 총재 목사 설교 말씀 충만, 성령 역사

이보다 더 큰 축복을 누리려면,

이제는 더 받기보다 가치를 깨달아

‘가진 것’을 가지고 쓰면서 더 차원 높여 행하고 최고로 기뻐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최고의 것>을 받고, 그 이상으로 더 받고 더 누리며 살게 됩니다.

<2016년 1월 24일 정명석 목사의 주일말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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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 정명석 총재 설교 – 스스로 행하는 자는 힘들지 않다 / 마태복음 11장 29-30절

정명석 총재 목사 주일 설교

jms 정명석 총재 설교 – 스스로 행하는 자는 힘들지 않다 / 마태복음 11장 29-30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사람이 무엇을 ‘공짜’로 줍거나 얻으면, 그리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실상 ‘공짜’는 거의 없습니다. 모두 지난날 자기가 얼마나 ‘공짜’로 얻었는지 생각해 봐요. 거의 없지요?
‘공짜’만 바라면서 살면, ‘얻는 것’이 없습니다.

고로‘공짜’를 바라기보다 조건-대가로 ‘행해야’ 합니다. 자기가 수고해서 만들고 행하여, 기대 이상으로 얻으면, ‘공짜로 얻는 것 이상의 기쁨’이 옵니다.

시험문제를 풀 때도 공짜로 얻어걸리듯 찍어서 맞힌 문제보다, 자기가 수고해서 공부하여 문제를 잘 풀면 그것이 더 큰 기쁨이고 보람입니다.
회사에서도 ‘공짜’로 무엇을 받으면 좋지만, 자기가 수고하고 행하여 기대 이상으로 인정을 받고 얻으면 그것이 더 큰 기쁨이고 보람입니다.

만사의 모든 일이 그러하고,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러합니다. 그러니 올해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뜻 안에서 절대 행한 대로 주시니, 열심히 행하고 볼 일입니다.

거리에서나 시장에서나 그냥 ‘공짜’로는 주지 않습니다. 돈을 내고 사야하고, 그것을 샀으니 ‘덤’으로 더 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행해야 그 조건 위에 하나님도 ‘덤’으로 더 주시고, 행한 것 위에 ‘공짜’로 더 주시면서 횡재한 듯 기분 좋게 해 주십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생판 그냥 ‘공짜’로 얻기는 힘듭니다. 행하면서, 자기가 행한 것 위에 ‘덤’으로 더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것’이 답이고, ‘행하는 것’이 답입니다.

오늘의 말씀!!
스스로 행하는 자는 얻고 힘들지 않으니, 스스로 행하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을 앞세우고, 그를 ‘머리’로 삼고 행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016년 1월 17일 정명석 목사의 주일말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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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 정명석 총재 설교 – 귀한 것을 진정 깨달아야 차원을 높인다 / 마태복음 16장 26절

정명석 총재 목사 수요 설교

jms 정명석 총재 2016년 1월 13일 수요 설교 :
귀한 것을 진정 깨달아야 차원을 높인다  / 마태복음 16장 26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생각>이 ‘어린아이 차원’이면 <행실>도 ‘어른 행실’을 못합니다. <생각>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 <행실>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생각>에서 주를 믿지 않으면 <행실>로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차원을 높이려면, 먼저 <생각의 차원>을 높여야 합니다. <생각의 차원>을 높여야 <행하는 차원>도 높아집니다.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차원이 높아지는지, 또 무엇에 대해 차원을 높여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하겠습니다.

배워서 지식으로만 일반적으로 알지 말고, 배운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배운 것을 확실하게 알려면, 깨달아야 합니다. <배워서 지식으로만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주>를 배워서 알았어도 깨닫지 못하면, 보통으로 믿고, 말씀을 들어도 보통으로 행하고, 신앙생활을 해도 보통으로 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주>를 진정 깨달은 자는 100배, 1000배 차이 있는 삶을 삽니다. 고로 차원 높여 행하여 육도, 혼도, 영도 변화됩니다.

깨달아야 <생각의 차원>이 높아지니, <가치, 대하는 것, 보는 것, 행실의 차원>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고 귀히 쓰기 바랍니다. 깨닫지 못하면, <이 시대에 태어난 자기 육신>이 얼마나 귀한지 몰라 보통으로 보고 삽니다. <자기 육의 가치>에 대해 생각의 차원, 깨닫는 차원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면 기뻐하며 각자 개성대로 신나게 뛰고 달립니다. 또한 기뻐하며 희망으로 살면서 낙심하지 않고 세상을 이깁니다.

사람들은 흔히 “명예가다. 재벌이다. 권력자다. 스타다. 미인이다. 외모가 뛰어나다.” 하며 그런 것을 보고 가치를 매기며 귀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명예, 재물, 권력, 외모… 그런 것 하나 없어도 <사람의 육신>은 그리도 귀하고 중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을 보면,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했습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입니다. <육>이 죽으면, 다 끝나 버립니다. 명예·재물·권력이 있어도, 외모가 뛰어나도 <육>이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먼저는 <자기 육>이 살아 있어야 꿈도 꾸고, 도전도 하고, 희망도 이루고, 얻고 쓰고 누립니다. <자기 자신>이 왜 그리 귀한지, 정말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를 믿고,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고 주 말씀대로 행함으로 <자기 영>을 휴거시켜 ‘천국’까지 가게 하여 영원히 살게 할 수 있는 육이니 그리 귀한 것입니다.

인생 100년 사는데, 그나마 거의 70~90년이면 인생이 끝납니다. 그러니 ‘명예·권세·재물·인물’은 ‘영원한 것’에 비하면 귀하지 않습니다. 당세만, 육이 살아 있을 때만 귀할 뿐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 자기 몸>을 가지고 <자기 영>을 영원한 나라에 가서 살게 만들 수 있으니, <자기 몸과 생각>이 그리도 귀하고 중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인간의 육>을 통해 <그 영>을 만들어 구원하고 휴거시켜 영원히 살게 하는 일을 ‘구원자’를 통해 행하십니다. 고로 <자기 생각과 육>이 그리도 귀하고, 자기를 영원히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구원자>가 그리도 중하고 귀합니다. <순간의 것>은 <영원한 것>을 절대 못 따라갑니다.

<흙>을 가지고 ‘농사지어 먹고 사는 것’은 보통으로 알고 사는 것입니다. 더 귀한 것을 깨닫고 <흙>으로 ‘100억, 300억짜리 그릇’을 만들어 팔아서 쓰면, 그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납니다. 이와 같이 <자기 육신>을 가지고 ‘인생 사는 데’만 쓰지 않고 <자기 영>을 구원하고 휴거시켜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면, <그 몸과 생각>을 수조 배 더 귀하게 쓰게 됩니다.  자기는 볼 만한 것도 없고, 명예도 없고, 권세도 없고, 재물도 없고, 인물도 없다고 가치 없게 여기지 말아요. 이 시대 전능자의 말씀을 듣고 휴거만 됐다면 천하에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고, 그 영은 ‘영원히 존귀한 영’이 되고, 그에 따라 그 육도 ‘천하에 귀한 육’이 됩니다.  인간으로 이 이상의 가치는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듣고 배우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의 차원, 깨닫는 차원’을 높이고, 그로 인해 ‘행실의 차원’을 높여 두루두루 행함으 <차원>을 몇 단계씩 쑥 높이기를 축복합니다.

 

<2016년 1월 13일 정명석 목사의 수요말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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